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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묵호항 - 파업전야
  글쓴이 : 금진항     날짜 : 16-08-20 05:27     조회 : 2142    
아무리 겨울 파도라지만, 이렇게 오랜 동안 배가 못 나간 적은 없었다. 게다가, 파도 치기 전 이틀 동안 해경 배가 근해를 지키고 있어서 그 기간은 더욱 연장이 되었다. 그 동안 게가 살이 차지 않아서 판매를 못하다가 겨우 대게 인터넷 판매를 시작한 나로서는 난감할 노릇이었다. 주문 받은 물건을 못 보내는 것은 고사하고, 고객들의 성화 전화에 스트레스가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답답한 마음에 속이라도 풀어보려고 용철과 소주를 마셨다. 십 여일 방 구석에 처박혀 있던 용철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까치머리에 이빨도 딱지 않아 구취 또한 지독했다.
그러나, 신세한탄을 먼저 시작한 것은 내가 아니고 용철이었다. 고객들의 성화에 화풀이라도 실컷 하려고 나이가 서 너 살 아래인 용철과 술도 한잔 마실 겸 불렀더니 그것 또한 여의치 않았다.

"장 사장님, 큰일 났어요. 그 동안 파도가 쳐서 그물도 어찌 되었는지 모르겟고...곰치 그물과 대게 그물이 산더미 일텐데...그 작업을 언제 할런지....근데 더 난리인 것은, 동네 아줌마들이 일을 안한데요!"

"네?.....왜?" 

"아, 글쎄....아줌마들과 할머니들이 일당 4 만원 주지 않으면, 일 안한데요......" 
".............." 

"사장님도 아시다시피...우리 선주들도 잘못하면 까지잖아요..그런데, 그물 작업 하는 아줌마들까지 저러니...." 

"저러다.....말겠지요...." 


"아니예요...이번엔, 그냥 넘어가지 않을 거 같아요...아침에 판장 앞에 지키고 있다가... 일 나가는 년들 머리채 잡아 끈다고...모여서 회의까지 했데요..." 


"예?"


뒤통수를 망치로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이제, 묵호항 여자들은 거의 다 알고 있었다. 게다가 내가 절임배추 장사를 하느라 같이 일한 아줌마들과 할머니들도 대다수 였다. 그 여자들의 정겨움과 소박함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에, 그녀들의 집단 행동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마치 다른 사람들 이야기를 잘못 들은 것 같은 착각에도 빠졌다.
그녀들을 움직이는 조직이 있을리도 없었고, 텔레비젼에 보이는 노동조합원들의 단체 행동을 빨갱이들의 소행으로 생각하는 소박한 그녀들이 의식화 되었을리도 절대 없었다.

"이상하잖아요...다른 데는 일거리가 없어서...일당이 내려가는데...횟집에서도..사람 내보는 판국에....그 여자들 세상 물정 몰라도 너무 몰라요..." 

"그러게....이상하네..."

나는 용철의 말에 맞장구를 칠 수 밖에 없었고, 용철의 말은 사실이었다. 경기하강의 한파는 이곳 묵호항에도 이미 들어 와 있었다. 해변 횟집에서 10 년 넘게 일하던 주방장도 내보는 판이었다.

"그 여자들, 일 안하고 며칠 술 퍼먹더니, 정신이 돌아버렷나...." 

"그러게....이상하네......"

묵호항에서는 나의 위치는 용철과 같은 사용자였고 자본가였다. 그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었고 그래서 나는 용철의 시선으로 용철의 편이 되어서 그녀들의 파업을 바라 볼 수 밖에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요.......겨울이라 일거리도 많지 않은데.....도루묵 철도 다 지나고...도루묵 철에는 잠잠하다가..왜 지금 난리를 치는 지...누가 부추키는 것도 같고..." 

"부추킬 사람이 없잖아? 그럴 사람이 어디 있어?

".....그래 말이예요...그거 누가 해요?....그 여자들이야 동네 사람들 다 아는데...."

묵호항 사람들은 대부분 전국에서 모여들거나 어나 지금까지 이곳에서 살아 왔다. 그래서 대부분 오십년 지기 이상의 친분이 있었고, 친척 또한 대부분이었다. 옆집에 숟가락이 몇 개 있다는 것도 알고 있을 정도였다. 그래서 파업이라는 것은 도저히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그런데....파업이라니.....

"누가 주동이래요?" 

"화자 할머니래요...." 

"네? 꽃분이 누나가?...그 누나가 왜?"

화자 할머니는 절임배추 할 때 나와 같이 일 하던 여자였다. 한자 이름이 꽃 화자라서 내가 장난 삼아 꽃분이 할머니라고 불렀고, 내 어머니와 같은 나이지만, 나와 워낙 친하게 지내게 되어서 내가 누나라고 부르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그녀는, 알콜중독에 폭력까지 일삼던 남편을 몇 년 전에 여의고, 장가도 못간 장남과 이혼한 둘째 아들의 아이들까지 돌보는 불쌍한 노인네였다. 그렇지만, 그런 그녀의 환경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이름 값이라도 하는 지 여는 묵호항 여자들과 달랐다. 나이 칠순이 넘었건만 여전히 곱게 화장을 하고, 식사를 하고 커피 마시는 것은 빠뜨리지 않았다. 또한, 묵호항 여자들 중에서는 유일하게 망사 옷을 입고 다니는 여자였다.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꽃분이 누나와 함께 망사 할머니라는 별명도 붙혀 주었다.

그런 그녀가 파업의 주동자라니. 근세 우리나라 여자들이 받아야 했던 온갖 가정적 사회적인 인권탄압과 불합리를 고스란히 온 몸으로 받아 온 그녀였다. 그런 세월의 무게를 노구에 지금도 안고 사는 그녀였다. 그런 그녀의 불행에도 아랑곳 없이 그녀는 묵호항에서 유일하게 그 나이 먹도록 여성성을 지켜 온 것이다. 그녀가 주동자라니......

아! 문득 떠 오른 생각이 있었다. 일당 4 만원. 그 시작은 나로 부터였다. 처음 묵호항에 들어 와 절임 배추 작업을 하면서 선주들에게 동네 여자들의 일당을 물었다. 3 만원이었다. 그러나, 나는 일이 끝나고 4 만원을 주었다. 나로서는 여러가지 계산이 깔린 선택이었지만, 우선 그녀들의 삶에 대한 나의 얄팍한(?) 동정(?)이었다. 내 이윤을 조금만 손해 보면, 어느 정도 내 양심의 자존심도 세우는 길이었다. 일당 만원을 올려주는 대신에 얻을 수 있는 것 치고는 꽤 괜찮은 선택이었다. 

묵호항의 박한 노동 조건은 자본가(선주)와 노동자(동네 여자들) 누구에도 만만치 않은 일들이었다. 워낙 오랜 동안 공동체 로서 섞여 살아 온 그들인지라, 자본가 노동자로서의 구분 또한 쉽지 않았다. 일당을 만들어 가는 기준 또한 애매했다. 누가 정해주는 것도 아니었고, 고기가 팔려나가는 금액이 선주에게 얼마나 이윤을 가져다 주느냐에 따라서 정해졌다. 그러나, 그것이 요 근래 들어 와서는 엉망이 되었다. 이윤이고 뭐고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일당 3 만원은 선주에게도 여자들에게도 마지막 마지노선이엇다. 선주들에게는 그것이 기름값과 그들의 인건비와 배의 감가삼각비를 제외한 마지막 선이었고, 그녀들에게는 그녀들이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게 하는 그런 돈이었다.

"아니....3 만원에서 3 만 5 천원 올려달라고 하면 혹시 모를까.....갑자기 만 원을 올려 달라니..그리고, 판장 앞을 지키고 있다는 것은 뭔지...이거 원..살다보니...별 일 다 있네요..."


나는 용철의 말에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원인 제공을 한 것이 내가 분명했고, 그 일을 풀어가기에도 나는 역부족이었다. 그리고 나는 같은 자본가 입장에서 대단한 실수를 한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내가 준 일당 4 만원이 원인임이 밝혀 질 것이고, 나는 묵호항 선주들에게 원성을 살 것이 분명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용철 모르게 꽃분이 누나를 만나서 신세 타령이나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할려고...." 

"화자 할머니가..우리 어머이 육촌 동생이니까....어머이 동원해 봐야죠..그게 안되면 친척들 불러 모아서..그물 작업해야지 별 수 잇나요....일당 4만원 줘서는 도저히 맞추지 못한다니까요?."

나는 내 이윤을 줄여서 나의 자존심을 만족시킬 수 있었지만, 용철에게는 이윤을 줄이는 일이 자존심 문제가 아니고 생존의 문제였다. 그리고, 꽃분이 누나가 일당 만 원을 올리는 주동자가 된 것은, 어쩌면, 그녀가 평생 받아 온 불합리와 억압에 대한 앙갚음 인지도 모른다. 그들의 만원은 나의 만원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문제였던 것이다. 그 만원의 무게가 어쩌면 이렇게 다를 수가 있을까?
나는, 용철에게 대게 때문에 고객들에게 당한 전화 스트레스에 대한 신세타령을 한마디도 못하고 그의 말을 들어 주기만 했다.
아무래도, 일부 고객들은 대게 값을 환불 받거나 구정이 끝나고 물건을 받을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구정 때까지 고객들 전화에 주눅이 들 것이고.....

"할머이!...너무 하잖아..? 할머이 살면 얼마나 산다고, 그깟 돈 가지고 그래?" 

"........장사장..왜 그래.."

화자 할머니와 마주 앉았다. 북평장에 나갔다가 동네 할아버지와 술 한잔 마시고,  화자 할머니를 불렀다. 그것은 순전히 술기운의 객기였다. 선주들과 묵호항 여자들의 파업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묘안도 없는 상태에서 무작정 주동자 화자 할머니를 불러내었다. 또한, 아직 묵호항에서는 이방인 취급을 받고 있는 내가, 관여 한다는 것도 건방진 일이었다. 그런데, 그 놈의 술이 일을 만들고 말았다.
나의 당돌하고 무례한 질문에도 아랑곳 없이 화자 할머니의 표정은 당당하고 평화로왔다. 도저히 파업을 주동한 욕심꾸러기 불만 투성이 얼굴이 아니었다.

"할머이...내가 절임배추 할때 4 만원 준 건 말이지....그거 정식 일당이 아니야. 여기 3 만원이라고 들었지만...내가 할머이들 고생한다고...목욕이라도 하라고 일부러 만원 더 준거야..." 

"장사장 고맙지..그거 내 알고 말고...."

나는, 드디어 나로 부터 말미암은 일당 4 만원의 책임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고 있었다. 어쩌면 내가 술기운에 화자 할머니를 불러 낸 것은, 내가 준 일당 4 만원 때문에 시작된 파업의 책임으로부터 벗어나고, 선주들의 원성을 사전에 막으려는 시도였는지도....
한참을 화자 할머니와 나는 술잔만 주고 받았다. 화자 할머니는 여전히 평화로왔다. 나는 드디어 술이 취해 졸기 시작했다. 

"장사장...자는 가..." 

"네? ...."

화자 할머니의 부르는 소리에 잠에서 퍼뜩 께어났다. 

"내 말 좀 들어보게.."

화자 할머니는,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내가 말이지..자네 말대로 얼마나 산다고..그깟 돈 만원에 목숨을 걸겠나...그리고 용철이야..내 먼 친척 조카벌이고..내 아들과 같은 놈이네..아기때 엎어서 키워주기도 하고..내가 용철이를 왜 못살게 굴겠나....조카는 내가 왜 그랫는지 아나?" 

"네...저야 잘 모르죠.."


문득, 화자 할머니의 당당한 말에 나는 갑자기 말문이 막혔다. 그리고, 내가 뱉은 말들을 집어 담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자넨...잘 모를걸세...여기 어촌계는 총대라고...배가진 인간들이 옛날에는 지들 멋대로 햇다네...우리 같은 여자들..지들 멋대로 부려먹고...지들은, 고기 팔아  니나노 집에 가서 기집끼고 배터지게 처먹어대고..우리 여자들은..집에서 배 굶으며 애새끼들 먹여 살리느라..그 추운 날에 바다에 나가 미역 따고 김 긁어 말리고..용철이 아버지 ,지금 어촌계장,종철이...다 같은 인간이었네..." 

"네..."

 "내가 말이지..용철이 야들...지들 아버지들 처럼 실수하지 말라고...지들 어려운 거 내가 옆에서 누구보다도 잘 알지 않은가...그놈들 선주 놈들도 사내인지라..가만 나두면 천지를 모르고 설처대니...내가 정신 차리라고..겁을 한번 준거네..." 

"네...그럼 용철이 부를까요?" 

"그래..불러 보게...그리고, 자네 일당 4 만원 준 거하고..이일하고 아무 상관도 없으니...너무 미안해 할 필요 없네..."

용철이가 왔고, 화자 할머니와 한참을 이야기 하다가, 용철은 닭똥 같은 눈물을 떨구고 말았다. 파업을 해결하는 협상치고는 너무나 감상적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술 맛은 참 좋았다.

다음 날 부터 묵호항 여자들의 일당은 3 만 5 천원이 되었다.
그러나, 3만 5천원 일당은 묵호항에서 커다란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그리고 이번 같은 일은 묵호항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같이 한 동네에서 한 솥밥을 먹다시피 살아 온 그들인지라 서로의 처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
3만 5천원 일당은 최저 임금과 비슷한 역할을 한다.  어떤 날은 일이 적어 두 세시간 하고 끝날 때도 있고 고기를 많이 잡은 날은 저녁 때까지도 일을 할 때가 있다. 그럴 경우 선주는 돈을 더 처주기도 하고 상품이 되지 못한 고기를 주기도 한다.
내가 글에서는 자본가 노동자 어쩌구 표현했지만, 사실 그 경계선도 무의미한 일이다.
그런 구분을 말 하는 것 조차 묵호항에서는 부끄러운 일이다.  묵호항에서의 노동은 도시 근로자의 노동의 의미와는 사뭇 다르다. 상품 생산을 위한 단위로서, 또는 임금을 받는 노동자로서의 의미는 비슷할  수 있지만, 사용자와 노동자가 노동을 대하는 의미는 상당히 포괄적이고 상호 보완적이다.
묵호항의 노동과 임금 뒤에는 숨어 있는 것이 있다. 숨겨진 노동과 임금은 서로에 대한 무한한 신뢰의 표시다. 선주가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잘 알기에 다른 일도 서슴없이 해준다. 여자들의 상태를 잘 알기에 슬쩍 뒷구멍으로 남들 모르게 돈을 더 주기도 한다.
그래서 묵호항의 노동은 상품 생산의 단위로서도 의미가 있지만 건강한 공동체 형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어느 날은 고기가 잡히지 않아 기름 값도 못하는 날이 있으면, 날을 잡아 여자들은 선주의 일에 돈을 받지 않고 해주기도 한다. 선주 역시 고기 값이 좋고 많이 잡은 날은 그냥 있지 않는다. 그날은 어판장에서 술판이 벌어지고 노래방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한국의 노동운동은 기형적으로 발전하였다. 일부 정규직 노조와 특정 노조의 임금은 상승했지만, 비정규직과 파견직 노동자의 임금은 너무나 빈약하다.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에는 동질감은 찾아 볼 수 없고 불신으로 가득하다.
현대 국가의 노동운동은 오로지 상품 생산의 단위로만 존재하고 생산 혁신을 위해 또는 이윤의 극대화를 위한, 자본가와 노동자의 공범으로만 존재한다.
 어쩌면 이것이 현대 국가의 노동자와 자본가의 한계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미국의 디트로이트나 한국의 거제도로 가는 길이 당연한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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