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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묵호항 - 묵호항 이야기를 쓰는 이유
  글쓴이 : 금진항     날짜 : 16-08-16 12:18     조회 : 2503    

“시에서 여기에 얼마나 투자했데요.”

“20억 쯤 되는 모양이예요.”

“그럼, 임대료도 꽤 되겠네요.”

“그래서, 임대료 결정을 못하고 이번 년말 까지 임시로 해보고 그때 가서 결정하재요.”

“아무리 싸게 한다해도 연리 2프로만 잡아도 한 달에 400만원인데, 만만치 않네요”


나의 질문에 사회자는 곤혹스러워했다. 아무리 시에서 좋은 의도로 투자를 하고 협동조합을 만들어서 마을 사람들을 위한 일이라지만 투자금에 대한 회수는 아니더라도 기본적인 재정 회계는 미루어서는 않되기 때문이다. 개떡 같은 시의회도 있으니 어쩌지 못할 것이다.


년 초에 아파트 게시판에 ‘논골담길 협동조합 조합원’ 모집이 있어서 전화했더니, 며칠 후 조합원 발기대회를 한다고 기다리고 했는데 그때는 아무 소식도 없다가, 몇 달이 지나 묵호항 주변 곳곳에 프랭카드가 걸렸고, 또 다시 조합원 모집을 한다는 거 였다. 뭐지, 하고 의아심을 품고 다시 한번 연락을 했더니 설명회를 한다기에 그 날 가서 내가 한 질문들이었다. 석연치 않은 것은 그거 뿐만 아니었다. 벌써 몇 사람이 모여 발기인이 되고 조합장과 사무장 인선을 마친 뒤였다. 그럼, 지들 끼리 해먹으면 되지 왜 또 조합원 모집인가. 꿍꿍이 속도 있는 것 같이 보였고, 도무지 될 거 같이 보이지 않았다.

시에서 팬션 방 네 개와 식당과 카페를 지어서 지원하고 마을 사람들끼리 협동조합을 만들어 마을 소득 사업으로 하라는데 도무지 답이 나올 거 같지 않았다.

묵호항 산동네를 위해 시에서 대대적인 예산을 들여 보수작업과 환경미화 작업을 한 것은 고마운 일인데 아무래도 이번 일 만큼은 헛수고 한 거 같기도 하다.


내가 협동조합 모집에 전화를 한 이유는, 단 하나이다. 내 스스로 자칭 아나키스트라고 자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권력(정부,국가,자본)의 간섭으로는 이 사회 또는 생산단위는 절대로 건강한 조직이 될 수 없다고 믿는다. 현대 국가의 가장 큰 문제점은 바로 정부와 야합한 자본의 막강한 권한이 인민들을 괴롭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스스로 인민들을 위한다고 하는 법과 제도 역시 사실은 인민들을 위한다기 보다 정치적 산물인 경우가 크다. 의회정치는 정당간의 야합과 타협의 場이다. 아니 의회정치의 탄생지 영국에서 보더라도, 왕과 귀족과 교회와 자본가와의 이해관계로 인해 발달한 것이 우리가 철석같이 믿고 있는 민주주의 의회인 것이다. 나중에 선거권을 노동자와 여성들에게 양보는 했고 노동자당이 만들어졌다고는 하지만, 그것 역시 타협이고 야합인 것이다.


우리나라에 지방자치가 들어오고 지방의회 의원들과 자치단체 장을 뽑는 일이 몇 년 마다 벌어지는데, 한 마디로 하면 동네 양아치들의 향연이고 전과자들을 만들어내는 산실이 되고 만다. 농수협 조합장 선거는 썩어도 너무 썩었다.

한마디로 선거로 대변되는 민주주의는 이미 수명을 다한 늙은 개에 불과하다.

차라리 독재시대로 돌아가서 국회의의이건 단체장이건 대통령이 다 임명하고 형식상으로 민주주의를 만들어 놓는 것이, 효율성에서는 나을 것이다. 절차적 민주주의는 거의 완성 되었으나, 그것이 더 인민들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자본이 들어 설 자리를 더욱 넓혔을 뿐이다.

바야흐로 본격적인 국가와 자본의 로맨스 시대가 열린 것이다. 수출 만이 우리의 살길이라 여기고 비약적으로 발전했으나 인민들의 삶은 겉으로 보기에는 나아진 것 처럼 보이나 더욱 피폐해졌다. 법과 제도가 누구의 편인가를 현대국가는 너무나 선명하게 보여준 것이다.


현대국가의 이런 딜레마를 분배로 해결 했는데, 그것 역시 바람직한 모습은 아니다. 분배의 재원 조차 세계 무역을 통한 제 3 세계에 대한 착취에 다름 아닌 것이다. 과거 식민지 시대의 착취와는 합법적인 것 처럼 위장을 하기는 했으나 근본적인 것에서는 변함이 없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정치적인 것이 아니라, 정부로 부터의 법과 제도가 아닌, 인민들 스스로 결정하는 자치와 스스로의 경제적 시스템을 갖춘 자립이다. 그런 의미에서 협동조합은 거기에 충족하는 조건인 셈이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 희망적인 협동조합이 존재하고 잘 운영되고 있다.


부탄이라는 나라는 왕이 통치하는 나라이지만, 동네에 전봇대 하나 세워도 마을 사람들의 동의가 없으면 절대 불가하다. 왕이 민주주의 하자고 해도 인민들이 왕은 절대 물러나서는 안된다고 하는 나라다. 절차적 민주주의가 완성되었다는 우리나라에서는 밀양 사람들이 그렇게 반대하는 송전탑을 세우고야 말았다. 그것도 반대하는 마을 사람들을 범죄자로 말들고 서 말이다.

애국심을 앞세우는 나라치고 올바른 국가는 없다. 그놈의 실체도 없는 애국심이 도데체 뭔데, 오히려 애국심은 순 기능 보다 역기능이 많다. 못된 독재자가 전쟁을 일으키기 위한 도구로 활용되기도 한다. 제국주의 국가들은 애국심으로 인민들을 바보로 만들어 버리고 만다. 박근혜 정부 들어와서 웃기는 일은, 국경일에 국기 계양을 일 주일 동안 한다는 거다. 아버지 박정희의 통치 기반을 확고하게 하기 위해 수 도 없는 애국자와 빨갱이를 만들었듯이, 딸 역시 아버지를 본 받고 싶으나, 이미 절차적 민주주의가 완성된 나라에서는 국기 계양으로 그 한을 풀고 있는 모양이다.


그런데, 이번 논골담길 협동조합을 보고 실망하고 말았다. 운영은 스스로 한다고 해도 지방정부의 자본과 감시에서 한 치도 벗어날 수도 없고, 운영 또한 일부 세력들의 사익에 대해 의심을 해 봐야 했다.

내가 썼던, ‘명덕호 이면수 값의 의미’ 와 ‘마른 오징어 값의 비밀’에서 묵호항 수산물 값이 어떤 과정을 거쳐 형성되었는지 밝혔다. 올바른 공동체의 의미는 바로 여기에 숨어 있다. 자발적인 공동체는 스스로의 경제 시스템에 의해 스스로 결정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묵호항 어판장 경매장에서 벌어지는 수산물 값의 의미와 묵호항 산동네에서 말려졌던 오징어 값에서 무엇이 진정한 민주주의 인지 어떤 경제적 시스템이 우리들 스스로를 돕는 것인지 알 수 있다.


유럽 국가들이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 대륙을 약탈하면서 유럽인들은 그곳에 존재했던 아름다운 공동체와 경제 시스템을 완벽하게 파괴했다. 그것이 오늘날 제 3세계가 굶주리고 혼란스런 이유다.

최초로 사회주의 국가를 완성한 소련 조차도, 농민들에게 토지를 무상으로 나누어 준다고 거짓말을 하고 그들을 전부 협동농장으로 몰아넣었다. 그거 보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러시아 농민들의 농업 공동체 ‘미르’ 를 철저히 때려 부셨다는 것이다. 공산주의 조직을 위해서는 인민들의 자발적인 조직은 방해가 되었다. 그 ‘미르’ 지금은 러시아 우주기지의 이름으로 쓰이고 있다는 것이 기가 막힐 노릇이다.

공동체 파괴는 좌우가 공범인 셈이다


일제 강점기와 625전쟁 박정희 정부의 경제 성장 시대에 수 많은 한국형 프로레타리아가 탄생되었다고 다른 글에서도 언급한 적이 있다. 비록, 그들은 어쩔 수 없이 먹고 살기 위해 이곳 묵호항으로 왔지만, 아름다운 그들만의 경제공동체를 완성한 것이다.

자칭 아나키스트인 내가 그것들을 놓치고 갈 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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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산업화 시대, 시골에서 잡초 처럼 쑥쑥 뽑혀서, 그들은 시골의 빈농에서 도시의 빈민이 되었다.그들이 갈 곳은 달동네 무허가 판잣촌. 시골의 삶보다 나아진 것은 약간의 돈. 도시는 점점 거대해져가고 빌딩은 높아져 가는데, 그들은 점점 초라해져 갔다. 아니, 더욱 높은 곳으로 밀려 올라갔다. 달 동네로.90 년대 중반인가. 텔레비젼 드라마로 [서울의 달]을 재미있게 봤었다. 달 동네에서 벌어지는 서민들의 이야기인데, 지금은 그런 리얼리티가 가득찬 드라마는 보기 힘들다. 도시형 현대판 신파가 가득찬 저질스런 드라마만 화면 가득 차 있을 뿐.서울의 달동네 이야기는, 그 속에 공동체가 형성되어 있음을 보여 주었다.


가난한 삶 속에 풋풋한 휴머니즘. 휴머니즘이 리얼리티로 살아나고, 그 속에서 그들은 서울의 자본주의를 지켜주는 작은 실핏줄이었다.동맥경화에 걸려 버린 서울을 진정으로 돌아가게 해 주는 그들의 고마움을 모르고 있었다.가끔 서울로 올라가 지하철을 타면, 열차 안에서 난장을 치는 장삿꾼들을 본다. 나는 그들의 상품을 어김없이 사준다. 그들의 아이디어 상품보다, 도시에서 살아남으려는 그들의 몸부림이 예술에 가깝다. 리얼리티는 바로 그들이었다. 순식간에 천원짜리 몇 장을 손에 움켜쥐고 다음 칸으로 향하는 그들의 등 뒤에 항상 박수를 보냈다.도시는 그들 때문에 살아 있는 것이다.


그런데 도시는 계획을 하면서 그들을 떠나보낸다. 더 외진 곳으로 더 높은 곳으로 더 어두운 곳으로. 도시계획이 그 동안 보여준 것은, 부동산 투기와 건설재벌의 이익 뿐이었다. 그들은 도시의 진정성을 모르고 있다. 도시는 항상 깨끗하고 정리된 것으로만 있어서는 안된다. 도시는 더럽고 천박하고 힘 없고 왜소한 것과 같이 있어야 한다. 도시의 풍요로움이 유지되자면 그러한 빈곤한 것들이 같이 있어줘야 한다는 것을 도시계획자들은 모르고 있다.


 자본주의 난장판인 도시에서 착취할 것이라고는 도시의 빈민이다. 부자들은 그들을 내쫓고 더이상 누구로 부터 착취를 할 것인가.이제, 도시계획이란, 부유층과 권력층이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을 억압하고 괴롭히는 수 많은 방법 중에 하나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다.


이제 더 이상 도시계획은 필요없다.도시에 단 하나 남은 휴머니티 공동체 달 동네가 사라지면 도시는 거대한 시멘트 덩어리로 남을 뿐이다.

멕시코의 콜로니아 프롤레타리아, 페루의 바리아다, 튀니지의 구어비빌, 인도의 부스티, 터키의 게세콘두,베네수엘라의 란초.....모두 서울 달동네의 다른 이름들이다.

마지막으로 바바라 워드의 페루의 바리아다를 연구한 결과를 읽어보자.


이곳에서는 혼란과 붕괴를 찾아볼 수 없다. 폭력적인 경찰 진압에 맞선 공유지 점거는 고도로 조직적 양상을 띠고 있고, 내부에 정치조직이 있어서 해마다 선거를 치른다. 수천명의 주민들은 경찰의 보호도 받지 못하고 공공설비의 혜택도 누리지 못하지만, 질서를 유지하며 더불어 살아간다. 점거 초기에는 짚으로 집을 짓지만, 곧 벽돌 집과 시멘트 집으로 바뀐다. 여기에 들어가는 노동력과 재료를 돈으로 환산하면 수백만 달러는 될 것이다. 취업률,임금,식자율,교육수준은 도심의 스럼보다 높으며, 전국 평균보다 높다. 범죄, 청소년 비행,매춘,도박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좀도둑은 좀 있지만, 도시의 다른 지역에 비해 낮은 것 같다.

....................


내가 언젠가 써놓았던 글 중 일부다. 난 요즘 산동네 노인들과 자주 술 자리를 갖는다. 그들에게 맛잇는 것도 대접을 한다. 그들의 과거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나키스트로서 자부심을 갖는다.


매년 선거철이 되어 온 동네가 개판이 될 때마다, 온 몸에 소름이 돋는다. 내가 아무리 양아치라고 우습게 알아도 저들 중에 누군가가 우리들의 삶을 좌지우지 할 것이 아닌가. 나아간다면 저들이 우리들의 역사를 규정짓고 만들어가지 않는가. 가치와 진실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저들의 가치에 의해 저들의 천박한 역사관에 의해 이 사회의 보편적인 사람들의 삶이 만들어지지 않는가.도대체 누굴 찍어야 하는가. 나와 연관된 직간접적인 인간들도 수 없이 많고 내가 속해 있는 정당도 있지만 나는 선뜻 누구 하나 찍을 수 없다. 아무리 찍고 싶어도 손이 벌벌 떨려서, 잘못 찍을 것이 뻔한 것이고, 그래서 지금까지의 모든 역사 처럼 그렇게 엉터리 역사가 만들어 질 것이고. 우리들의 보편적인 사람들의 삶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이 말이다.


도대체 역사란 무엇인가. 게다가 우리가 배우는 한국사라는 것은. 그리고 민족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난 도무지 이런 것들이 도대체 왜 존재해야 하는 지 모르겠다. 그것은 내가 양아치 들 중에서 누군가를 찍어야 하고 그래야만 민주 시민의 권리와 의무를 다해야 ㅎ하는 것이고. 그것이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길이라는 개소리와 같은 것이다. 자고로 민족이라는 말을 지꺼린 인간들이 바로 저런 양아치들이 권력을 잡은 19 세기 이후다. 조선시대 까지 우리가 교육 받았고 거의 상식화 되어 있는 한국사와 민족의식을 규정 짓는 고려사 삼국유사 삼국사기는 서민들은 도저히 구경도 할 수도 없는, 선비들일지라도 거의 읽을 수도 없었던 희귀한 문서였다. 게다가 단군신화가 몇 줄 언급되어진 신화에 관한 이야기는 아마 만주 동북 지구 어느 만주 부족 마을에서 전해져 내려온 이야기 정도일 것이다. 


물 건너 일본 사기 역시 19 세기가 한참을 지나서 극우파 일본 정치인들이 어디선가 발굴해낸 것이다. 아니, 그 전에는 거의 신경도 쓰지 않았던 것을 명치유신 이후로 세상에 등장을 시킨 것이다.


중국 서점에 가 보면 수없이 돌아다니는 통감절요 역시 그렇다.

발해를 한국사에 편입시킨 것이 얼마 되지 않는다. 대조영이 고구려인인가 말갈인인가 대해서는 논쟁이 많지만, 대체적으로 학계에서는 말갈인으로서 고구려의 신하였다는데 동의를 하는 편이다. 대조영이 고구려의 신하였기 때문에 발해의 상층부는 고구려인이고 하층부는 말갈인이라는 논리는 기가 막히다. 우리의 위대한 한국사는 당연히 그래야 하기 때문이다.


 위대한 민족 한족은 만주 벌판을 장악하고 호령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잠시 강대국에 움추려 숨을 죽이고 있는 민족이지만 언젠가는 우리의 영토 만주 벌판을 되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독도에 대한 역사 왜곡과 무엇이 다른가. 아마, 국가주의 전쟁 때문에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말갈족이 있다면 기가 막혀 웃을 것이다


.게다가 명문화된 역사란 것이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석연치 않는 구석이 너무나 많다. 후세에 남겨진 극소수 사료만으로 기술된 허구라는 것이다. 더구나 그 상상된 이야기 조차도 보편적인 사람들의 이야기는 전혀 없고 권력을 가진 자와 또는 가지려고 하는 자와, 그래서 그런 자들이 쓸 수 밖에 없는 영웅들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징기스칸이 그렇고 광개토왕이 그렇고 풍신수길이 그렇다.


 얼마전, 방송에서 인기리 방영되어진 주몽의 이야기는 비록 무협지 같은 헛소리지만 그래서 봐 줄 만하다는 것이다. 어차피 역사라는 것은 그네들의 영웅 무협지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19 세기 까지 전 세계 인구는 15억에서 20억 사이로 추측이 된다. 그 인구는 거의 이천년 동안 변하지 않았다. 20 세기 들어와서 인류의 생활과 성문화가 극도로 발달하여 지금은 70 억 가까운 인구가 되었지만, 과거 농경사회에서는 인구가 그렇게 급작스럽게 늘어야 할 이유가 없었다.중세까지의 인류의 역사는 유럽의 역사와 인도와 동 서아시아 일부의 역사가 전부다. 중세까지의 역사에 등장한 인구수를 대충 잡으면 5천만명이 넘지 못한다. 나머지 14억 오천만의 역사는 어디에 있는가. 아메리카 아프리카 남 아시아 태평양 인도양 대서양의 부족들 그리고 북극의 부족들의 역사는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나머지 14억 5천만의 역사는 사라진 것이 아니다. 다만, 기록되어지지 못했을 뿐이다.


다시 말하면 국가를 형성하지 못했고 권력을 잡지 못했을 뿐이다. 그들의 문명 역시 그들의 사회와 자연환경에 맞추어 건재하고 있었다. 그들이 글자를 갖지 못했다고 해서 그들을 미개인이라고 착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래서, 역사란 강제된 기록이고 허구라는 것이다. 그것에 준거하여 민족이란 말이 탄생된 것이고, 그것을 합리화 시키기 위해 한국사를 우리는 학교에서 배워야 하는 것이다. 그 증거는 발해의 역사가 한국사냐 중국사냐를 따지는 것이고, 일본사기를 두고 백제인인가 일본인인가 또는 백제 귀화인인가를 따지는 것이다. 그것은 보편적인 삶을 살아가는 일반인들에게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것이다.


내가, 묵호항 이야기를 쓰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묵호항의 역사를 쓰고 싶기 때문이다. 내가 아니더라도 누군가가 있었다면, 게으름뱅이 나는 절대 쓰지 않았을 것이다. 주위를 아무리 둘러 보아도 나 이외는 아무도 없다. 아무도 몰라 주어도 그래도 십여년 전에 소설 책 한권이라고 낸 적이 있는 삼류 작가이기에 묵호항 사람들의 진정한 역사를 꼭 남기고 싶었다.


나는 묵호항 이야기를 쓰면서 한글 맞춤법을 무시할 생각이다. 문법 또한 그렇다. 나는 한국 문학에 대해 불만이 많다. 인텔리 문학이라는 것이다. 문학을 하면 인텔리가 되고 또한 인텔리 만이 문학을 할 수 있고 또 문학인이 되는 과정 또한 그렇게 지난하게 인텔리 스럽다. 가끔 지방의 사이비 문학인들을 보면, 그들에게서 더욱 인텔리들을 흉내내려는 처절한 몸짓을 본다.

내가 생각하는 문학은 이렇다. 누구라도 쓰고 장르를 구분 짓지 말고 마구 써야 하고, 꼭 쓰지 않아도 말로도 문학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구전문학)

그래서 나는 묵호항 이야기에서 소설이라는 형식에 탈피했다. 소설이 가지는 장점만을 살짝 빼와서 진정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마음대로 지껄이고 싶었다. 소설의 주 재료가 되는 사건과 캐릭터를 무시했다. 다만 묵호항에서의 인물과 사건은 묵호항의 역사와 공동체가 가지는 의를 기록하기 위한 도구 일 뿐이다. 마치 좋은 효능을 가진 쓴 약을 먹기 좋게 설탕으로 코팅한 당의정 처럼 말이다.

묵호항 산동네 사람들이 왜 이곳까지 와서 이렇게 살고 있는 이유를 편하게 설명하기 위해서는 이토록 난감한 일을 하지 않아도 될터이지만, 좀 더 과학적인 시선으로 세심하게 그것들을 밝히고 싶었다.


그러자면 글들이 딱딱해지고 난해해지고 읽기 싫어지고 심지어 거만하게 보일 것도 같아 약간의 조미료를 뿌린 것이다. 글들 중에는 나의 얄팍한 지식으로는 부담이 될 만한 것들도 있을 터이고, 주제가 너무 대단한데 그것을 감싸고 있는 소설 형식이 너무 초라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이런 경우 나는 독자들로부터 비판을 받을 각오고 가지고 있다. 어쩌면 그런 비판과 토론을 나는 더욱 바라는 지도 모른다. 그런 글 들 중에 하나가 ‘천곡동 술집 마담 이야기' 다. 우리 현대사에서 625 전쟁이 차지하는 비중은 너무나 크다. 그 커다란 주제를 술집 마담의 이야기로 포장하는 일은 가당치도 않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그러나, 비록 커다란 역사인식이 필요하다고 할지라도 나는 멈출 수 없다.


이곳 묵호항 산동네에 오게 된 사람들은 그 역사의 가장 큰 피해자이기 때문이다. 맞아 죽을 각오로 이 글을 쓰는 것은, 나는 그들 편에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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