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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묵호항 - 아카시아꽃은 피었는데
  글쓴이 : 금진항     날짜 : 16-05-19 04:58     조회 : 2181    
중앙시장 술집에서 화장실에 가기 위해 동문산 자락을 올려다 보니 온통 아카시아꽃이다. 동문산 상층부나 해맞이길 언저리는 간혹 소나무나 벚나무가 보이는데, 중앙시장 바로 앞 산 자락은 아카시아꽃으로 눈이 내린듯 하얗다.
한참을 보다가 다시 술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노인 옆에 앉는다. 노인의 측은한 어깨가 술 기운으로 인해 더욱 초라하다.
 
"애들 엄마 죽고 그 여자가 들어와서 장사도 무지 잘 됐는데 말이야. 덕장 열 여섯개 맡아서 용달차 두대에 기사 두면 조수 두명 데리고 전국으로 돌았는데....."
 
노인의 얘기는 계속되었다. 나 역시 술기운에 잠시 까무룩 거리면서도 노인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그런데, 그 여자가 돈을 빼 돌려 사채하면서 챙기는 줄도 몰랐지. 도망쳐서 부곡동에서 술집을 한다기에 찾아갔지......."
 
나의 댓구가 없어도 노인의 이야기는 쉼 없이 이어졌다.
 
내가 중앙시장 일 술집에 단골로 들락거리게 된 이유는 막걸리 통 때문이었다. 십여년 전, 소주를 너무 마셔 건강이 좋지 않아 술을 끊지는 못하고 막걸리로 바꾸게 되었다. 막걸리도 방부제가 들어 있지 않아 발효균이 죽지 않은 생막걸리로 정했는데, 역시 내 예상대로 건강은 예전보다 상당히 좋아졌다.
막걸리른 지방에서 만드는 동네 막걸리와 전국적으로 유통되는 전국구 막걸리가 있는데, 생막걸리는 동네 막걸리가 대부분이다. 전국으로 유통되는 막걸리는 어쩔 수 없이 쉬지 않게 방부제를 넣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나는 그 막걸리 통에 끌려 술집에 들어갔고, 행운으로 묵호항으로 몰려들었던 과거의 인간들을 만날 수 있었다.
항구에서 일이 끝나면 대부분의 시간을 이곳 묵호동 발한동 구 시가지에서 보낸다. 천곡동 신시가지는 왠지 나에게는 어울리지 않아 어색할 정도다. 신시가지에 있는 대기업이 운영하는 대형마트에 한번도 가지 않았다. 대신, 과거 보영극장 자리에 있는 지방 마트를 이용하는 편이고, 채소류와 생선류는 마트 앞의 중앙시장을 이용한다.
보영극장이 나왔으니 문득 기억나는 장면이 떠오른다. 삼십년도 전 나의 젊은 시절, 극장에 들어가면 사람들이 꽉 차 있었고 그것이 대 부분 술집 아가씨들이었다. 그녀들의 싸구려 화장품 냄새가 진동했었고, 그녀들의 껌 씹는 소리가 시끄러울 지경이었다.
나는, 그 보영 극장과 바로 위 시외버스 터미날과 까만 석탄가루가 휘날리던 묵호역과 발한 삼거리를 헤집고 다녔다.
교육과 전통의 도시 강릉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다가 잘못된 일이 있어, 이곳 묵호의 고등학교로 전학을 왔었다.
사춘기 소년에게 묵호는 '해방구' 였다. 교련복을 입고 묵호역 앞의 포장마차와 묵호항 앞의 호프집을 마음대로 다닐 수 있었다. 당시 묵호의 흥청거림은 대단했다. 대낮에 보영극장 뿐만 아니라, 발한 삼거리 카바레는 묵호 어판장에서 고기를 다듬다가 장화를 신고 몸빼 바지를 입은 어부의 아내의 비린내가 가득했다.
그곳에는 이성과 예의와 교만이 들어설 자리는 눈을 씻고도 찾아 볼 수 없었다. 적나라하고 설 익은 욕망들이 그대로 드러난 채, 그 어떤 사치스런 감정과 점잖은 예절은 개를 갖다줘도 먹지 않을 정도였다. 나도 그들에게 포섭되어 갔다.
 
나는 뛰고 있었다. 뒤에는 놈들이 소리치며 쫒아오고 있었다.
 
"서어! 서어! 씹쌔끼야!"
"저 새끼 잡앗!"
 
그날, 햇살 좋았던 가을 날에 나는 묵호 삼거리를 마치 마라톤 선수처럼 질주하고 있었다. 휴일 날 지나가던 사람들은, 관중이 되어 달려가는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늘은 정처없이 맑았다. 햇살의 파편들이 내 눈에 뛰어 들어 따가울 정도였다. 방파제에 나갔다가, 앞 묵호 깡패새끼들을 만난 것이 실수였다. 어디서 소문을 들었는지, 강릉 명문고에서 전학 온 내가 괜히 못마땅한 모양이었다. 놈들은 나에게 복종을 요구했고, 나는 그 요구를 묵살했고, 나의 선방에 싸움은 시작되었다. 도저히 놈들의 떼거리를 당할 수 없을 것 같아, 도망을 친 것이다.
삼거리에 다달았을 때, 앞에서 놈들의 다른 일행들이 길을 막았다. 도망 칠 수가 없었다. 독 안에 든 쥐였다. 뒤에는 놈들이 숨을 헐떡이며 사냥개 처럼 달려오고 있었다. 다행이었던 것은 앞에서 발길질 했던 한 놈의 발을 잡아 삼거리 양복점 쇼윈도에 밀어 넣을 수 있었다. 대형 유리창은 박살이 났고, 나는 잽싸게 유리조각 두 개를 잡았다.
양 손에 유리조각을 잡고 나는 소리쳤다.
 
"덤벼! 덤벼! 덤비란 말이야! 씹쌔끼들아!"
 
놈들이 주춤하며 뒤로 물러났다. 관중들의 표정도 경악을 하는 모습이었다. 내 손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하늘에는 쌕쌕이가 하얀 그림을 그리며 날고 있었다. 갑자기 내 눈에서는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갑자기 엄마가 보고 싶었다. 눈물이 흐르기 전에 나는 애써 눈물을 참고 다시 소리쳤다. 놈들에게 약점을 보이면, 끝나는 싸움이었다.
 
"빨리 덤벼 개새끼들아!"
 
그러면서 나는 유리 조각 두개를 양손에 들고 놈들에게 다가갔다. 놈들이 서서히 멀어져 갔다. 관중들도 하나씩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나는 그 싸움에서 승리를 할 수 있었다. 역시, 시골 날깡패새끼들은 순진했다. 그 사건이 있은 후, 나는 앞 묵호 깡패새끼들과 친하게 지낼 수 있었고, 학교도 졸업하지 못하고 서울 학원가로 도망갈 때까지 놈들과 술이나 빨면서 지낼 수 있었다.
 
1978 어느 햇살 좋았던 가을 날을 나는 잊지 못한다. 그 장면은 마치 영화의 정지된 화면 처럼 나의 머리 속에 화석처럼 남아있다. 그 가을 날의 햇살의 파편과, 나를 쫒아왔던 묵호시내 날깡패 새끼들의 욕설과, 나를 응시하고 있었던 관중들과, 하늘을 날았던 쌕쌕이의 하얀그림, 그리고 피가 흐르는 줄 도 모르고 유리조각을 들고 서 있었던 내 모습과, 그때 흘렸던 눈물.......그때, 나는 강릉의 명문고에서 묵호의 고등학교로 전학을 간 상태였다. 지금은 북평과 묵호가 통합되어 동해시로 되어, 시내 중심이 천곡동으로 옮겨갔지만, 그 당시는 기차역 굴다리를 빠져나와 삼거리가 중심지였다. 묵호는 영동선 기차역의 중요 정차역이었고, 동해안의 유명한 어항이었고, 외국 사람이 들락거렸던 국제항이었다. 대낮에도 묵호극장은 술집 아가씨들의 껌 씹는 소리로 시끄러울 정도였고, 앞 묵호 목욕탕과 미용실도 그녀들이 없으면 장사를 못 할 정도였다. 밤이면 삼거리의 카바레는 외항선 탄 남편을 둔, 바람 난 유부녀들이 뻔질나게 드나들었다. 굴다리 위 기찻길을 석탄을 실었던 기차가 지나가면, 바람에 까만 먼지가 날아오르곤 했다. 그래서, 그 당시 묵호는 석탄의 검은색과 술집 아가씨의 빨간 루즈 색이 묘한 대조를 이루는 도시였고, 바람 난 유부녀들과 니나노집 한복 아가씨들의 싸구려 향수 냄새와 어판장의 고기 썩은 냄새가 기가 막히게 섞여서, 강한 자극을 주던 도시였다. 어판장의 아줌마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악다구니를 하며 싸우는 것이 일상이었고, 항구 위의 달동네에서는 아이들이, 그 밑의 니나노 집에서 쓰레기통에서 뒤진 콘돔을 풍선으로 불면서 노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오징어 배가 들어오는 날에는 온 도시가 흥청거렸다. 지나가는 개새끼들 조차 돈을 물고 다닌다고도 했다. 비린 내 나는 돈은 온 도시를 점령했다. 심지어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 아이들도 그 당시 학생으로서는 만지기 힘들었던 천원짜리 돈으로 짤짤이를 했고, 그런 돈으로 고등학생이 시내 호프집을 돌아다녀도 아무도 말릴 사람이 없었다.
 
나는, 그때 순진했던 깡패새끼들이  그립다. 얼띠기 사춘기 소년의 유리조각과 내가 흘렸던 빨간 피에, 그들이 가지고 있던 소박한 권력마저 순순히 내주었다. 그들이 누리고 있었던 작은 권력으로 나를 내리누르려 했지만, 나는 그 당시 그들의 작은 권력에 향수를 느끼고 있다. 어판장의 고기 썩은 냄새와 기차역에서 번져나왔던 까만 석탄가루, 술집 아가씨들의 껌 씹는 소리가 정답게 다가온다. 콘돔을 불고 놀았던 아이들과 악다구니 싸움을 했던 어판장 아줌마들이 사랑스럽다.
 
분명, 1978 년 그 당시의 묵호의 표정은 십 대 후반의 고등학생에게는 좋지 않는 교육환경이었다. 그것을 기억하는 것 조차 보수적인 교육관을 가진 사람에게는 터부시 될 일이다. 나 역시 이성적으로는 바람직한 환경은 아니었다고 말하고 싶다. 그러나, 내가 그때의 기억을 아름답게 포장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내가 다녔던 명문고에서의 기억에 대한 억한 심정일 지도 모른다.
그때도 마찬가지로 학교는 대학이 전부였다. 네모난 공간에 아이들을 가두어놓고 새벽부터 밤까지 감시를 하며 채찍질 했다. 자율학습이라는 이름은 전혀 자율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것을 참지 못하면 문제아가 되었다. 나는 그것에 반항을 하며 뛰쳐나왔다. 그것은 거대한 폭력이었다. 보이지 않는 권력의 힘이 아이들을 내리누루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대학을 가야지만, 권력을 잡을 수 있다고 말하는 교육이었다. 박정희의 파시즘이 교실에도 지배하고 있었다. 깡패새끼들의 작은 권력은 그에 비하면 조죽지혈이었다. 차라리 그 당시 묵호시내의 천박한 표정이 학교의 이성적으로 포장된 네모난 공간보다 인간적이었다.
 
권력으로 교육을 시키고, 권력을 잡는 것이 최상이라고 가르치는 것은 분명 교육이 아니다. 나는 비록 깡패새끼들에게서 작은 권력은 취할 수 있었지만, 학교의 커다란 폭력 앞에서는 어쩌지 못했던 순진한 고등학생에 불과했다.
1978 년 어느 햇살 좋았던 가을 날의 화면이 눈에 선하다.
 
위의 글은 언젠가 그 시절을 생각하면서 써놓았던 글의 일부다.
지금 내 옆에는 그 시절의 이야기를  나와 비슷하게 털어놓는 노인이 있다. 내가 다니는 이 술집은 전부 노인들이다. 아마, 내 나이 오십대 후반이 가장 어린 축에 들 것이다. 이 술집에는 과거의 묵호가 그대로 있다.
 
"그래서, 그 여자 술집에 불을 질렀지. 너무 분해서 말이야. 감방 갔다왔더니 다행이도 얘들은 잘 크고 있었지. 우리 어머니가 살뜰하게 돌봤거든......."
 
노인은, 해맞이길에서 바다가 가장 잘 내려다 보이는 게구석 윗 동네 해맞이 마을에 살고 있다. 나는 그의 집 닭장에 오골계를 갖다놓고 키우고 있다. 노인은 외로웠던지 그런 나를 자주 방긴다. 나는 노인의 이야기를 들어준다.
 
요즘, 해맞이길은 아카시아꽃 냄새가 진동한다. 중간중간에 오동나무 연보라 빛 꽃이 아카시아꽃의 위세에 눌려 초라하다.
아카시아꽃이 피었는데 아직 꽁치가 돌아오지 않았다. 삼 년 전에 꽁치가 무지막지 하게 들어 온 이후, 꽁치가 사라졌다. 가끔씩 상회에 보이는 국산 꽁치는 전부 죽변항에서 올라 온 것들이다. 그 꽁치는 한 단계를 거치고 상회를 통했기에 비싸다.
꽁치가 나타나지 않은 어판장은 초라하다. 꽁치가 지나가면 오징어가 나타나는데, 오징어도 시원찮을 거 같다.
노인은 이야기를 하다가 졸고 있다. 나는 노인을 부축해서 술집을 나선다. 나서자, 아카시아꽃 냄새가 진동을 한다.
흠뻑 마신다.
그런데, 꽁치는 돌아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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